남편과의 관계가 고민이에요. 첫 회사에서 같은 팀원이었는데, 몰래 사내 연애를 하다가 제가 이직한 후 연애 4년 만에 결혼했고, 이제 5년째 접어드니 어느덧 10년이 되었네요. 시간이 흐르면서 불타는 열정보다는 편안함이 중심이 되었어요. 연애 때도 편안한 관계를 지향했던 터라, 이 자체는 불만이 없어요. 그런데 갈등이 자꾸 누적되다 보니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점점 잦아져요. 남편도 저에게 불만이 있을 거고, 저도 단점이 있으니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최근엔 이 관계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점들도 많지만, 남편이 냉소적이고 짜증을 잘 내고, 기분이 나쁠 때 감정을 저에게 표출하는 일이 많아서 상처받곤 해요. 그래서 혹시 제가 용기가 없어서 정리해야 할 관계를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이 관계를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요? 아니면 용기를 내어 정리하는 쪽으로 고민해야 할까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리니의 답장
경이님, 부부 사이는 부부만 아는 거라 쉽게 조언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제가 경험한 걸 바탕으로 이야기해볼게요. 모든 문제의 시작은 결국 ‘말’인 것 같아요. 최근에 유퀴즈에서 인상 깊게 본 영상이 있는데, 인간의 모든 말은 둘 중 하나라고 하더라고요. ‘부탁의 말’과 ‘감사의 말’.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남편과의 대화를 이 기준으로 바라보니 정말 맞는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저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하면 "저 말이 감사의 말일까? 부탁의 말일까?" 하고 해석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그런데 이게 의외로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제가 "오빠 외조 덕분에 내가 일을 할 수 있어." 라고 하면, 남편은 "더 벌어요. 자만하지 말고." 라고 말해요ㅋㅋㅋ 이 말을 그대로 들으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데, 제가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파악한 제 남편의 표현 방식이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자기가 일할 수 있게 나도 열심히 서포트할게." 라는 의미로 하는 말이거든요. 예전같으면 왜 같은 말이라도 그렇게 하냐고 엄청 화를 냈을텐데, 이제는 "응. 더 벌어볼게!"라고 대답해요. 싸울 일이 아닌 거죠😅
또 한 가지 방법은 남편을 ‘관찰’하는 것이에요. 제 책에도 <남편 관찰일지>라는 파트가 있는데, 감정을 빼고 제3자의 입장에서 남편의 행동을 기록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아래처럼 기록하면, 감정이 섞이지 않은 채로 남편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남편의 패턴이 보이기도 하고,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어요. 남편의 어떤 행동이 나의 발작 버튼을 건드리는지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핸드폰을 본다.’
✅ ‘말을 걸면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 템포 늦게 반응한다.’
마지막으로, 서장훈씨가 나오는 '이혼숙려캠프' 프로그램도 추천해요. 자극적인 장면만 편집된 유튜브 편집본 말고 풀로 보시면 좋겠어요. 이게 처음엔 온갖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왜 저럴까' 한숨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여러 케이스의 부부 모습을 보다보면 제 모습이나 남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던 누군가의 모습이 이해되기도 해요. 우리는 저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고, 결혼은 미숙한 서로가 만나 성숙해가는 과정이잖아요. 그걸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씀드린 방법이 아니더라도, 경이님께서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어떤 결정을 하든 ‘나를 위한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요.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결론은요. 저는 경이님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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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친구 프롬제제님의 사연
안녕하세요! 리니님! 뉴스레터에 이런 사서함이 있는 줄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늘 좋은 이야기들 덕분에 힘들 때 위로받았답니다. 오늘 뉴스레터를 보니 저도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록하는 일이 너무 좋지만, 가끔은 “이걸 그냥 기계처럼 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거든요.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제 모습이 보일 때가 있어요.
비어 있는 페이지를 보면서 저도 한동안 멍하니 다이어리를 쳐다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리니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빈 페이지도 그 자체로 괜찮은 게 아닐까?" 싶어졌어요. 여백이 있는 삶이 저에게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달까요? 내가 하루하루 왜 그 페이지를 비워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자체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항상 좋은 이야기들로 뉴스레터를 보내주셔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
↪️ 리니의 답장
제제님 :) 최근에 저도 시작만 하다 만 기록들을 정리했어요. 앞장만 채워져 있거나, 듬성듬성 비어 있거나, 아예 손도 대지 않은 노트들 있잖아요.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남겨두기도 애매한 기록들요. 고민만 백 번 하다가 결국 쓴 페이지만 찢어서 클립으로 묶고, 포스트잇에 어떤 기록인지 인덱스를 붙였어요. 그리고 무인양품에서 파일을 사서 하나하나 비닐에 넣어 정리했죠. 그렇게 정리한 기록 파일에 '시작'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하다 만 기록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는데, 찢어서 정리하고 이름을 붙여주니 저는 '시작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종 "리니님은 원래 긍정적이죠?"라는 질문을 받는데요. 저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제가 생각하는 긍정은 '마주한 문제를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할 줄 아는 태도'라서 문제가 생기면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여러 시도를 해 봐요. 기록을 남긴다는 행위만으로도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고 싶은데, "빈칸이 많다"는 이유로 나를 깎아내리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방법을 실험해봤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심지어 그 과정에서 낱장 기록 100장을 모아 '기록이라는 세계' 강남 교보문고 이벤트도 했고, 와닿는 기록은 따로 노트에 붙여 '조각 모음집' 이라는 기록 수집 노트도 만들었어요. 완벽한 기록도 없고, 미완성인 기록도 없더라고요❤️ 비워둔 페이지가 부담스럽다면, '바쁨, 귀찮음' 같은 단어라도 하나 적어보세요! 빈칸이 왜 생겼는지 알면, 속상한 마음이 훨씬 줄어들 거예요😉 제제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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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친구 김쪼꼬님의 사연
요즘 삶이 재미가 없어요. 리니님이 "늘 같은 날은 없다"고 하시지만, 아무리 기록을 해봐도 늘 같은 일상 같아요. 재미를 찾기 위해 어떤 기록을 하면 좋을지,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받고 싶어요! 리니님과 기록 친구분들은 요즘 어떤 행위에서 재미를 찾으시나요?
↪️ 리니의 답장
쪼꼬님 :) 삶이 재미없을 땐, 그냥 그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인생이 늘 재밌기만 하다면, 전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아요. 😅 모든 게 노잼인 시기엔 뭘 해도 재미없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니까요. 과거의 저는 억지로 재미를 찾아 헤매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지치더라고요.
아! 매일 같은 하루인 것 같을 때 해보면 좋을 방법이 하나 있어요. 최근 매일의 영감 수집 북토크에서 ‘압축 풀기’라는 개념을 들었는데 저도 해보고 있거든요. 서은아 작가님은 매번 일상이 똑같다는 영감 수집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방법을 쓰신대요. 예를 들어, "아침에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일하다가 집에 왔다." 라고 말하는 멤버에게, 한 문장씩 압축을 풀어보는 질문을 해주시는 거예요. "왜 늦잠을 잤어? 알람은 맞췄어? 알람 소리를 뭐로 했어? 전날엔 뭘 했길래 늦잠을 잤어? 야식을 먹었어? 야근을 했어?" 이렇게 압축된 한 문장에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하루를 풀어가다 보면, 별것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 속에서도 ‘별것 있는 순간’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저도 해보니까 진짜 그렇더라고요! <꾸준함의 기술 > 책의 저자는 매일 기온을 기록한다고 해요. 그냥 온도를 적는 것뿐이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계절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도 했고요.
세상의 모든 순간이 재미있을 순 없지만,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작은 기록이 ‘내 삶이 늘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줄 수도 있어요. 어제의 온도와 오늘의 온도만 해도 다르듯이요. ☀️🌡